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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눈물

작성자명최준렬
조회수1096
등록일2002-07-23 오전 2:15:57
더러는 옥토에 떨어지는 작은 생명이고저……

흠도 티도, 금가지 않은
나의 전체는 오직 이뿐!

더욱 값진 것으로
드리라 하올 제,
나의 가장 나아종 지닌 것도 오직 이뿐.

아름다운 나무의 시듦을 보시고
열매를 맺게 하신 당신은
나의 웃음을 만드신 후에
새로이 나의 눈물을 지어 주시다.

오늘도 그랬다.
모두가 휴가를 떠난 텅 빈 도시의 한구석에서 한 여자는 내 앞에 앉아 울고 있다.
여자는 남자보다 자주 운다고 한다.
여자가 남자보다 시인의 감성을 더 지녀서일까.
그러한 면도 있겠지만 여자의 몸은 고귀한 생명이 잉태되고 탄생되는 경외스런 창조의 공간이기 때문이기에 그때그때 느끼는 감정은 실로 눈물로밖에 표현할 수 없는 경우도 많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본의 아니게 나는 여자들의 눈물 앞에 앉아있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고 그 눈물의 현장에서 환자와 함께 울어줄 수도 없는 일이다.
표정을 바꾸지 않고 나는 김현승 님의 <눈물>이라는 앞의 시를 마음속으로 읊조리면서 여자의 눈물이 멈추기를 기다릴 뿐이다.

산부인과 안에서 흘리는 여자의 눈물은 여러 가지 유형이 있다.
오랫동안 임신하지 못하다 기적처럼 자신의 몸 안에서 태기를 느낄 때 반신반의하면서 진찰실에 들어선다.
임신이라는 진단이 내려지고 그 임신을 축하한다는 말과 동시에 여자의 얼굴에는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내린다.
손이 귀한 집의 며느리였을 때는 흐느끼기까지 한다.

우리 간호사가 그 분의 어깨를 토닥거리며 눈물을 닦아낼 화장지를 챙겨줄 때면 그녀 가슴 가득히 피어오르는 커다란 꽃송이를 보게 된다.
그러나 정기적인 산전진찰에서 자라고 있어야 할 태아의 심장이 멎어 있을 때 나는 신음 같은 한숨을 내쉬면서 계류 유산을 설명해야 한다.
그때도 여자는 눈물을 어김없이 흘린다.

그런 자연유산은 총 임신의 약 10%에서 나타나는 것이며 다음에 건강한 아기를 가질 수 있다고 위로해 주지만, 그 눈물을 멈추게 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매정하게 울지 말라고 화를 낼 수도 없어, 자연유산의 80% 이상이 임신 12주 이전에 발생하며 그 중 50%는 태아의 염색체 이상이 원인이며 부모의 연령이 증가할수록 자연유산도 비례해서 증가한다.

또 출산 3개월 이내에 다시 임신된 경우도 유산 빈도가 증가한다고 한참을 주절거리고 나서 환자의 얼굴을 들여다보면 그때서야 자신의 울음을 간신히 정리한다.

가장 편안한 엄마의 자궁 속에서 자라지 못하는 태아는 이 험난한 세상에서도 자랄 수 없다.
그래서 건강한 생명만 걸러지는 과정이 아닐까라는 위로 아닌 위로를 해야만 눈물이 잦아든다.

폭풍처럼 매섭게 몰아붙인 산통 뒤에 아기의 건강한 울음과 함께 시작된 평화 속에서 흐르는 엄마의 눈물의 의미는 아무리 많은 생명을 받아내는 산부인과 의사로서도 헤아릴 수 없다.

그러나 그 분만대 위에서 태어난 아기가 여아라는 사실 때문에 서럽게 우는 산모를 보고 있으면 인간적으로는 안쓰럽기도 하지만 미울 때가 더 많다.
막 태어난 새 생명에게 얼마나 예의에 벗어난 일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여자의 눈물은 간혹 나를 괴롭게 한다.
임신이 되자마자 태아의 성별을 묻고 그 성별을 꼭 자신에게 알려달라고 숫제 눈물로 호소하는 경우가 있다.
죄 없는 한 여인을 그토록 큰 고통 속에 잡아매둔 남아선호사상에 분노를 느끼게 한다.

그러나 아주 매정하게 거절해야하는 고통이 나에게 있다.
여자의 눈물 앞에서 약해져서는 안될 때도 있다.
나를 저주스럽게 바라보면서 눈물을 거두고 나간 뒤에 그 여자의 고통을 헤아려보는 진료실의 분위기가 절대 좋을 리가 없다.

순수하고 아름다운 그래서 감격스런 그런 눈물이 나의 가장 나아종 지닌 것이었으면 좋겠다.

                        - 세상을 임신한 남자 -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