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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의 일생

작성자명최준렬
조회수1222
등록일2002-06-21 오전 4:50:20
  양을 치던 목동이 어느 날 갑자기 전쟁터에 내몰렸을 때처럼, 대도시의 고등학교에 진학했던 나는 그곳의 아이들과 치러내는 경쟁에서 좀처럼 적응할 수가 없었다.
아침 일찍부터 밤늦게까지 오직 공부에만 매달리는 그 많은 수재들과의 투쟁에서 나는 외로움과 숱한 좌절을 함께 느껴야 했다.
노력해도 되지 않는 것이 있다는 사실을 그때서야 처음으로 깨달았고, 떠나온 농촌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깊어만 갔다.

‘송홧가루’의 시인 목월의 <윤사월>이라는 권두시가 있었던 고등학교 1학년 국어 교과서만이 나에게 유일한 위안이었다.
모두가 밤늦게까지 도서관 아니면 교실에서 밤을 밝히면서 공부만 하는 틈새에서 딱히 다른 친구나 어떤 일을 찾지 못했던 나는 학교 도서관에 가서 문학서적만을 뒤적이면서 입시공부에서 조금은 아웃사이더가 되어있었다.

어떻게 알았는지 세계사를 가르치던 담임선생님에게 불려갔다.
이 학교에 들어온 것은 일류대학에 들어가기 위해서지 소설 나부랭이를 읽기 위해서가 아니라고 호되게 야단맞았던 쓸쓸한 기억이 있다.

커다란 반딧불이 네온이 외벽에 붙어있던 도서관 열람실에서 모파상의 <여자의 일생>을 눈물 흘리며 읽었던 그해 가을밤이 생각난다.
여자의 일생은 곧 우리들 어머니의 일생처럼 마음이 아팠다.

그때부터였는지 확실하지는 않지만 나도 모르게 내 의식의 저변에는 여자는 선이고, 그 선한 여자의 불행 대부분은 그 옆에 서있는 남자의 악에 의해서 이루어진다는 나만의 견고한 진리(?)가 자리하기 시작했다.

나는 남자이면서도 여성의 편인 페미니스트가 너무 이른 나이에 되었는지도 모른다.
숫기도 없었으려니와 오직 선으로만 인식되었던 여성에 가까이 가는 것 자체가 악의 행위처럼 생각이 들어 멀리서나 아니면 꿈속에서 여자를 바라보게 되었다.

남자에 의해서 불행해지는 여성을 위한 일을 해야 한다는 기사도 정신이 있었는지 어느 날 나는 여자들 한가운데서 일을 하고 있다.
이제는 하루종일 여자의 일생을 다섯 단계로 나누고, 환자가 앉자마자 초경 아니면 최종 생리일 그리고 폐경을 앵무새처럼 물으며 전혀 문학외적인 여자의 일생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렇다, 사회적으로 남녀가 평등하더라도 여성은 임신과 출산이라는 크나큰 역할을 감당하면서 인류를 번식시킬 여자만의 엄숙한 사명을 가지고 있다.
그런 번식의 과정에 남성은 아무런 일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여성처럼 자신의 몸 안에 한 생명을 키워내지 못하는 것은 생물체로서 큰 결함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여성은 성장과정에서 신체의 변화가 남자에 비해서 복잡하고 생리적인 변화 역시 다양하다.
연령에 따라 생리적인 발달과 함께 정서를 예민하게 변화시키면서 임신이라는 신비스런 일을 수행한다.

여성은 평생을 9세까지의 유년기와 10~18세까지의 사춘기, 19~45세까지의 성숙기를 거쳐 46~55세까지의 갱년기 그리고 56세 이후의 노년기로 구분할 수 있다.
여성이 남성과 가장 다른 것은 매달 되풀이되는 생리이고, 어쩌면 그 생리는 여성을 여성답게 하는 여성의 꽃인지도 모른다.

사춘기에 시작하는 초경부터 갱년기에 나타나는 폐경까지 그리고 그 사이에 일어나는 임신과 출산의 과정에서 여성의 생리일은 큰 기쁨이기도 하고 커다란 불행이 되기도 한다. 정상적인 생리가 교란되었을 때 그 원인을 찾는 것이 내 하루 일과의 많은 부분이 된다.

십수년 동안 그런 원인들을 탐구하면서 모파상의 ‘여자의 일생’에서 형성되었던 무조건적인 선의 개념으로서의 여성에 대해 악일 수도 있는 많은 비밀들을 알게 되었다.
그때부터 나는 선과 악의 적당한 비율로 형성된 남과 여는 어느 면에서 평등하고 또 같은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조금은 균형 잡힌 여성상을 이제야 확립하게 된 것 같다.

단지 여자이기 때문에 보호받고 사랑 받아야 한다는 유아적인 생각에는 동의할 수 없다. 쉼없는 자기 개발과 능력에 의해 남녀의 구별 없이 정당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비판적 페미니스트로서의 나를 자리 매김 한다.
여자의 일생을 거울에 비춰보면 남자의 일생의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침몰하는 ‘타이타닉호’에서 남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불이익을 당했다는 성의 역차별에 대해서는 이야기하고 싶지는 않다.

               - 세상을 임신한 남자 -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