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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 절반의 주인들

작성자명최준렬
조회수882
등록일2002-05-30 오전 7:34:54
  하루의 일과 중에서 여성과 만나는 시간이 거의 전부인 나에겐 가끔씩 남성이 그리워지고 밤이 되면 그들과 만나 술 마실 궁리를 해보곤 한다.
어찌 보면 여성 앞에서 말하는 것이 남자 앞에 서는 것 보다 훨씬 자연스런 나는 여성의 모습과 영혼 속에서 내 삶의 많은 부분을 보내곤 한다.

새침하고 어느 때는 옹졸하기까지 한 사춘기의 소녀에서부터 당당한 20대의 꽃 같은 여성 그리고 너무 풀어져버린 중년의 여인, 그리고 한없이 안타깝게 나이 들어가는 폐경기 이후의 여성들이 혼재되어있는 진료실에서 파노라마처럼 스쳐가는 여성의 생의 행로와 그들만의 환희와 비애를 바라보면서 우리사회에서의 여성의 지위와 미래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곤 한다.

아들이 있어도 또 아들을 낳아야 기분이 좋은 할머니들의 고집과 딸을 낳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는 산모 곁에서 여성에게 딸은 불공평한 이 사회에서 또 하나의 원죄처럼 고통스러운 존재인가에 대해 분노하기도 하고, 또 그렇게 닫힌 사고를 가진 여성을 통렬히 비판하는 나는 항상 비판적 페미니스트로서의 입장에 서 있곤 한다.

초음파검사를 하면서 비디오테이프 녹화 여부를 혼자서 결정하지 못하고, 또는 수술 후 영양제 하나 자기 마음대로 맞지 못하고 남편의 허락을 받는 모습을 보면서 도대체 여성이 경제적으로 또는 자신의 삶에 얼마나 주체적이지 못한지 화가 날 때가 많다.

한 번은 내가 속해있는 문학단체에 새로 가입하고자 했던 여성이 남편이 허락하지 않아 올 수 없다는 말을 듣고 참으로 답답했었다.
생각해보자, 남편은 자기의 취미생활로 어느 단체에 가입할 때 부인의 동의를 받아야 하고 또 부인의 반대에 부딪혀 여가생활을 포기하는 것이 가능하고 또 당연하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여성이 자신의 삶에 주체적이지 못하고 남자의 종속물처럼 살아왔던 긴 역사의 그림자가 지금도 우리 앞에 망령처럼 드리워져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암울한 여성의 지위를 극복하기 위해 선각자처럼 여성의 인권을 위해 투쟁하여 쟁취하는 여성단체들의 모습은 초여름 나무처럼 풍성해지고 있다.

  월드컵 경기가 다가와서 인지 6월 13일 치러질 지방자치제 선거의 열기가 아직 뜨겁지 않다.
이번 선거에서도 광역 또는 기초 단체 선거에서 여성의 의석비율이 기대한 만큼에 훨씬 못 미칠 것이라고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다.

유권자의 51%를 차지하는 여성이 남자들이 생색내듯이 던져주는 광역의원 비례대표의 50% 이상을 여성으로 공천하거나 지역구의 30% 이상을 할당하도록 한 정당법에 만족해서는 안 된다.    
여성이 적극적으로 선거에서 후보로 나서야 하고 또 여성 유권자들이 직접 투표에 참여해 이 사회의 절반의 주인인 행세를 해야 한다.

여성이 정치에 참여하겠다고 하면 그 여성을 공격적이거나 호전적으로 인식하지나 않을까 또는 남성의 성역처럼 여겨지는 정치판에 무례하고 파렴치한 사람으로 경멸받지나 않을까 더 나아가 가족생활이 불편해질까 무서워 포기해버리는 패배주의적 사고에서 분연히 일어서야 할 때가 지금이다.

그래서 돈과 조직이 그리고 지역감정이 지배하는 패권적 정치판에 신선한 바람과 따뜻한 희망이 자라나는 정치의 꽃밭을 만들어야 한다.

하나의 생물체로서 인간을 생각해보면 한 생명을 자기 안에 키워낼 수 있는 여성은 남성보다 훨씬 위대하다.
고귀한 생명을 잉태하고 키워낸 여성이 치열한 경쟁과 환경파괴 그리고 이기주의로 파괴된 세상을 생명에 대한 외경, 따뜻함, 문화적 감수성과 민주적 관계망으로 엮어진 새로운 세상으로의 변화를 위해서 필요하고 적당하다는 나의 생각에 동의하는 사람이 많았으면 한다.

얼마 전 남미의 어느 나라에서는 교통경찰의 부패가 하도 심해 고육지책으로 거의 모든 교통경찰을 여성으로 교체했다는 신문기사를 본 적이 있다.
더러운 곳에서 독버섯처럼 자라는 “비리”가 아닌 깨끗한 물속에서만 사는 “쉬리”를 여성에게 기대했는지도 모른다.

지금은 감성적인 것이 가장 강한 힘이 되는 시대이다.
어찌 보면 정치 사회 환경 교육 모든 분야에서 여성적인 것이 요구되고 그것이 가장 큰 힘이 되는 이 때에, 이번 선거에서는 정말 그런 따뜻하고 깨끗한 그리고 꼼꼼하고 집요한 여성적인 정치 문화가 정착되고 그동안 이 지역에서 우리 시민에게 봉사했던 여성들이 아름다운 전원도시를 꿈꾸는 살기 좋은 시흥시를 만들어 가는데 큰일을 할 수 있는 결과가 있었으면 한다.

그러기 위해서 여성들이 스스로 후보로 나서고 이 사회를 정의와 사랑으로 바꾸기 위해서 어떤 후보가 필요한 지를 심사숙고해서 이번 선거일에 많은 여성들이 이 사회의 주인으로서 투표에 참여했으면 한다.    

                     - 시흥시 자원봉사 협의회보에 기고한 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