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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작성자명최준렬
조회수1013
등록일2002-05-20 오전 9:02:39
  진료시간에 늦지 않기 위해 서둘러 나선 출근길, 승강기에는 먼저 출근한 남자가 놓고 간 강한 화장품 냄새가 남아 있다.
중간에 승강기를 멈추고 올라탄 초등학생의 눈에는 아직도 잠의 긴 꼬리가 남아 있다.
그래서인지 어깨에 맨 가방이 더 무거워 보인다.

아파트 마당에 나서면 산소 같은 아침바람이 나를 에워싸고, 막 세수를 한 듯한 태양은 상큼하게 웃어주고 있다.
오늘따라 차의 시동도 부드럽다. 그리 바쁜 일없는 오늘은 차의 속력을 높일 이유가 없다.

나이 드신 경비실 아저씨의 거수경례는 항상 나를 당황하게 하고 몸둘 바를 모르게 한다. 핸들 가까이까지 머리를 숙여 인사를 받지만 그게 도리어 위험한 운전인 것을 안다.
그러나 차마 손을 가볍게 흔들어 인사할 수 없는 나이의 경비 아저씨다.

5월이면 온통 장미꽃으로 치장되던 초등학교 담을 끼고 좌회전하기 위해서는 신호등을 받아야 한다.
신호를 기다리는 시간은 편안하게 주위에 눈길을 줄 수 있어서 좋다.
녹색 신호를 등대처럼 보고 건너는 초등학생들의 등교하는 모습은 항상 풋풋하다.

초등학교 2학년쯤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는 제 엄마를 끌어안듯 젊은 여교사의 허리를 껴안는다.
그 광경은 정말 꽃밭이다.
그 담임선생님은 매번 청바지에 안경을 쓰고 입술 화장이 진하지 않다.
소년의 머리를 어루만져 주다가 뒤따라온 여자아이의 손을 잡게 해 짝을 지어 교문 안으로 들여보낸다.

녹색 에프론을 두른 엄마들이 건널목 간수처럼 노란 차단기를 옆으로 비켜줘야만 나는 좌회전 할 수 있다.
교차로를 일부러 서서히 빠져나가면서 그 여선생님의 얼굴을 한 번 더 훔쳐본다.
참 깨끗하다.
녹색 어머니회원과 나누는 이야기에는 사랑과 향기가 있다.
차안에서는 들리지 않지만 표정과 웃는 모습에서 나는 그것을 볼 수 있다.

우리 시흥시의 학교 가까운 사거리에 들어서면 ‘촌지가 교육을 망친다. 촌지 및 학교비리 상담’ 이라는 플래카드가 바람에 위세도 당당하게 나부끼고 있다.
마치 간첩신고 포스터처럼 전화번호까지 적혀 있다.
순간적으로 어지럽다.

등교하는 어린이들에게 왜 저런 내용을 읽히게 하는 것일까 부끄럽다.
어른들끼리 조용히 해결해야 할 문제다.
낫을 들고 가 애들이 더 보기 전에 창피한 구호를 끌어내려야 한다.

어느 누구도 촌지문화를 찬양하지 않는다.
그러나 몇몇 사람들은 지금도 촌지를 주고받는다.
어느 직업에나 그런 악의 존재는 조금씩 섞여 있다.
그러나 아무리 돌밥이라 말해도 밥그릇에는 돌보다 쌀이 더 많이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다.

돌이 조금 섞여 있다고 버릴 수는 없다.
밥을 지은 사람 모르게 조용히 돌을 골라내고 맛있는 표정으로 먹어야 한다.
우리가 아는 훌륭한 선생님이 매일 아침 출근길에 그 플래카드를 보고 얼마나 참혹해 했을까.
또 그것을 본 학생들은 교단에 선 선생님을 어떻게 생각하면서 바라보고 있었을까.
참으로 사려 깊지 못한 어른들이 많다.
어른들의 허물은 아이들 모르게 우리끼리 조용히 해결해야 할 일이다.

촌지를 주지 않는 많은 학부모들은 학교 선생님에게 줄 돈이 없어서 주지 않는 것만도 아니다.
우리 자식들은 엄마 아빠의 지위나 돈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기 스스로 노력하고 착하게 행동함으로써 선생님에게 사랑을 받아야 한다.

왜냐하면 어느 누구도 자신의 자식을 평생 곁에서 지켜주지 못한다.
혼자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을 키워주는 것이 교육이고 부모가 해야 할 일이다.
또한 자신의 노력과 선행에도 불구하고 선생님의 칭찬과 사랑을 촌지를 갖다바친 친구에게 빼앗겨 버린다면 어린 가슴에 얼마나 쓰라린 비탄의 상처를 남길 것인가.
평생 치유될 수 없는 깊은 상처는 마침내 갖은 자에 대한 증오로 곪아터져 그 무서운 칼끝 앞에 우리의 자녀들이 부들부들 떨면서 지내야 하는 지옥의 시대가 도래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 증오와 미움이 지금 촌지가 오가는 현장에서 싹트고 커가고 있는데 어떻게 우리는 그것을 교육이라고 말할 수 있으며 교육자라고 부를 수 있겠는가. 한 아이의 엄마 아빠로서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있겠는가.
스스로 자신의 인생을 개척해 나가야 할 어린 자식을 위해서도 촌지는 독약이며, 촌지를 주지 못한 사람의 자녀에게 들이대는 비수다.

내 자식의 영혼을 맡긴 우리들의 선생님에게 어떻게 부끄러운 봉투를 내밀 수 있을까.
선생님의 인격을 그렇게 모독해도 되는 것일까.

한쪽 담이 온통 장미꽃으로 덮인 초등학교의 등교길에서 엄마나 이모같이 여선생님의 허리를 껴안은 그 소년의 주위는 항상 청정해역이어야 한다.
촌지라는 이름의 검은 기름띠를 풀어 그 해역을 오염시키는 폐선이 되어서는 안된다.
오늘 우리를 이렇게 키워주셨던 선생님들을 더 이상 슬프게 하지 말아야 한다.

                - 세상을 임신한 남자 -중에서